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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이야기/Sports

KGC인삼공사 新돌격대장 김태술, HE'S BACK!


최창환 기자, 2011-10-13 17:17:41

WIDE INTERVIEW
HE'S BACK!
KGC인삼공사의 新돌격대장
김태술

국방의 임무를 완수하고 보금자리로 돌아갈 때의 그 짜릿함. 대한민국의 신체 건장한 남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필자도 무엇이든 해낼 것 같던 전역 직후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침 김태술(27, 181cm)과의 인터뷰가 있었던 9월 19일은 그가 공익근무요원 생활을 마치고 민간인으로 다시 태어나던 날이었다.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될 때만큼이나 밝은 웃음을 짓는 김태술에게서 군 복무를 마쳤을 때의 필자와 같은 자신감이 느껴졌다. 2011-2012시즌 개막을 앞둔 지금, 김태술은 ‘KGC인삼공사의 부활을 이끌겠다’는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다.

군에 입대한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자의 마음도 안양 KGC인삼공사의 절박함에는 비할 수 없다. KGC인삼공사는 2009년, 프로팀으로서는 감히 단행하기 힘든 결정을 내린다. 팀의 간판을 유망주 가드와 맞바꾼 것은 물론, 주축 선수들을 모두 군 입대시키는 강수를 띄운 것. 당장의 어중간한 성적보다는, 2년 뒤 확실한 성과를 올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전력 약화는 불 보듯 뻔했다. 재능 있는 신인들은 계속해서 수급했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2008-09시즌 이후 두 시즌 통틀어 KGC인삼공사가 거둔 승수는 고작 32승. 부산 KT가 2010-2011시즌동안 거둔 승수(41승)보다도 적다. 팀 역사상 가장 힘든 2년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도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리빌딩이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렀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KGC인삼공사를 위해 해결사가 돌아왔다.‘6년 주기설’의 후발 주자 김태술. 지난 2년 간 꽁꽁 숨겨졌던 그가 드디어 KGC인삼공사에서의 데뷔전을 앞두고 있다. 김태술은 지난 2년 간 자신을 기다리던 KGC인삼공사의 간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SK를 가슴에 묻고

김태술의 데뷔는 화려했다. 이동준과 양희종, 함지훈 쟁쟁한 신인들이 몰려 ‘황금 드래프트’라 불리던 2007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태술은 전체 1순위로 지명되는 영예를 안았다. 지명권을 얻은 서울 SK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이후에는 탄탄대로였다. 데뷔시즌부터 기량을 뽐낸 김태술은 SK를 6년 만에 플레이오프로 이끌면서 신인상과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렸다. 신인 가드가 베스트 5에 선정된 건 2001-2002시즌 김승현 이후 처음이었다. SK는 ‘플레이오프 가뭄’을 해결해준 김태술을 간판스타로 키우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방성윤 이후 가장 많은 2년차 연봉(1억 7,000만원)을 안겨줬고, 팬 초청행사의 특별공연은 늘 김태술의 몫이었다.

하지만 김태술과 SK의 행복한 나날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8-2009시즌 개막을 3개월여 앞두고 어깨 부상을 당한 것은 불행한 결말의 시작이었다. 전국의 용하다는 병원은 모두 찾아가 봤지만 “수술 외엔 방법이 없다”는 진단뿐이었다. 일본에서 “재활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하다”는 소견을 받아 시즌-아웃의 위기는 넘겼지만, 시즌을 정상적으로 준비하기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방)성윤이 형이 미국으로 건너간 상태라 저까지 빠질 수가 없었어요. 무리해서 재활을 진행했고, 팀 훈련에 고작 3일만 참여했을 뿐인데 곧바로 정규리그에 투입됐어요. 연습이 부족하다보니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죠. 그런 몸 상태라면 마이클 조던이라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을 거예요.”

무리해서 시즌을 치른 김태술의 밸런스는 무너져있었다. 루키시즌에 보여줬던 날카로운 패스, 정교한 슈팅. 모두 남의 얘기였다. 김태술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자 2008-2009시즌 중반, 핵폭탄급 루머가 흘러나왔다.

김태술의 트레이드 설이었다. 그 대상은 KT&G(현 KGC인삼공사)의 주희정. 취재진은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퍼졌던 루머를 당사자가 모를 리 없었다.

섭섭함? 서운함?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부족했다. 자신을 미래로 여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잔인하게도 김태술은 SK 소속으로 뛰며 가슴 한 구석으로는 SK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트레이드가 발표될 때는 ‘올 것이 왔구나’라며 덤덤히 받아들였다고.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죠. ‘기회가 있었다면 조금 더 있었다면…’이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결국은 자기 밥그릇을 스스로 챙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쉬웠던 순간들을 되뇌던 김태술은 길고도 짧았던 SK에서의 2년을 마지막 한마디로 정리했다. “제가 떠난 후에도 SK가 잘 풀리지 않는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요. 드래프트 1순위, 신인상…. SK에서는 좋았던 기억이 너무 많거든요. 첫 시즌부터 신경 많이 써주셨던 것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죠.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요. 이제는 아쉬움이나 서운함은 모두 잊고 KGC인삼공사 생각만 해야죠.”

김태술의 공익근무요원 탐구생활

김태술과 주희정의 맞트레이드 발표는 2009년 4월 30일에 있었지만, 한국농구연맹(KBL)의 트레이드 승인은 한 달여 뒤인 6월 1일이 되어서야 떨어졌다. 규정상 선수간의 맞트레이드는 6월부터 가능했기 때문. 김태술이 공식적으로 ‘안양 맨’이 된 뒤로 어느덧 2년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김태술은 아직 KGC인삼공사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러본 경험이 없다. 트레이드 승인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군 입대를 준비했기 때문. 당초 김태술의 군 복무 희망 근무지는 국군체육부대(상무)였다. 이미 상무행을 확정지은 ‘절친’ 양희종과 함께 군 생활을 한다면 본인은 물론 KGC인삼공사에게도 굉장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김태술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상무가 이미 지원자 모집을 마무리했을 뿐만 아니라 KGC인삼공사는 ‘1보 후퇴 2보 전진’을 위해 내부적으로 김태술의 군 입대를 확정지은 상태였다. 결국 김태술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훈련소에 끌려가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그는 안양실내체육관에 인접한 비산동사무소에서 공인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해야 했다. 김태술은 동사무소에서 시민들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해주는 업무는 물론,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2년을 보냈다.

농구의 인기가 하락세에 있기 때문일까. 놀랍게도 동사무소에서 “어? 김태술이다!”라며 사인을 요청한 팬은 단 1명도 없었다. 굴욕이라면 굴욕, 사건이라면 사건일 수도 있는 에피소드였다. ‘김태술의 굴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태술은 안양실내체육관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빠짐없이 체육관을 찾아 KGC인삼공사를 응원했다. 벤치 뒤편의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어느 날이었다. 정체 모를 시민이 머쓱하게 다가와 김태술에게 꺼낸 한마디. “매점 가려면 어디로 가야돼요?” 프로농구선수가 졸지에 체육관 관리직원으로 전락해버리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군대에 갔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잊혀질까 싶던데요. 하하. ‘차라리 잘됐다. 다른 거 다 제쳐두고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것만 생각하자’고 마음먹었죠.”

김태술은 군 입대를 앞둔 2009년 7월에도 점프볼과의 만남을 가진 바 있다. 당시 공익근무요원으로서 김태술은 “선수가 아닌 관전하는 입장에서 농구를 보며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느끼고 보강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전했는데, 그에게 그때의 다짐을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평균이라 보기에 적합했던 그의 체격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 부단한 노력이 아니었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외형적 변화였다. 두꺼워진 팔뚝과 탄탄한 가슴근육은 분명 예전의 김태술이 아니었다. 구단 트레이너에 문의한 결과 그의 근력은 2년 전에 비해 3kg 이상 증가했다고. 2년이라는 공백이 생긴 김태술에게 웨이트 트레이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말이 2년이지 팀 옮긴 후 6개월이 지난 뒤에 입대했기 때문에 사실상 공백은 2년 6개월 그 이상이라 할 수 있죠. 오랫동안 경기를 뛸 수 없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몰려오더라고요. SK 시절 경기 영상을 보면서 ‘힘을 키워야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됐어요.”

변화가 있었던 것은 단지 외형뿐만이 아니다. 김태술은 틈이 날 때마다 신인 시절의 경기 영상을 꺼내들었다. 수백 번씩 봤던 경기를 보고 또 돌려봤다. 어떻게 해서든 약점과 부족했던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스크린을 받은 이후 이동 공간이 적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머릿속으로 또 다른 공격 루트를 그렸고, 패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숨은 미스매치 찾기’에 혈안이 되기도 했다. 슛을 시도할 때 중지와 검지손가락이 붙는 버릇도 2년 사이에 개선이 됐다. 예기치 못한 군 입대였지만, 현실을 직시한 김태술은 그렇게 조용히 칼을 갈고 있었다.

KGC인삼공사, 그리고 양희종

2011-2012시즌을 바라보고 리빌딩에 돌입했던 KGC인삼공사나 재기를 벼르고 있는 김태술에게는 이제 뿌린 만큼 거두는 일만 남았다. 김태술은 스타군단으로 새롭게 태어난 KGC인삼공사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는다. 웨이트 트레이닝, 슛 자세 교정 등 다각도에서 내면을 살찌운 김태술이지만, 그가 지난 2년간 가장 중점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선수단의 특성 파악이었다. “제가 책임감을 갖고 팀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함께 뛸 선수들의 장단점을 알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죠. 돌이켜보면 이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팀의 경기 결과보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쫓는 것에 더 관심을 쏟았던 것 같아요.”

이미 SK에서 스타군단을 지휘했던 경험은 KGC인삼공사에서의 데뷔를 앞두고 있는 김태술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SK 시절 김태술은 개성 강한 선수가 많은 팀 전력에 ‘어떻게 해야 이 선수들을 모두 돋보이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문경은, 전희철, 방성윤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뛰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그는 오히려 스타군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포인트가드로서의 소신을 잃고, 팀원들의 욕심을 자제시키지 못했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KGC인삼공사 역시 당시의 SK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스타군단이다.

김태술은 단결된 팀을 만드는 것만큼은 SK 시절보다 자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팀 선수들도 어떻게 보면 개성이 강해보이지만, 모두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인드가 있어서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훨씬 수월할 거예요. 저도 경험이 쌓인 만큼 그때보다 냉정하게 경기를 운영할 자신이 있고요.”

김태술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국가대표 포워드이자 KGC인삼공사의 예비 프랜차이즈 스타 양희종. 1984년생 동갑내기인 양희종은 김태술의 KGC인삼공사행을 누구보다 반겼던 선수이기도 하다. 이들의 인연은 고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동아고에 재학 중이던 김태술과 삼일상고의 양희종은 신입생 시절부터 ‘농구 좀 한다’는 소리를 꽤나 많이 듣던 유망주들이었다. 연습경기에 앞서 양희종과 인사를 나누며 ‘좋은 친구 사이가 될 것 같다’는 직감을 받았다는 김태술은 청소년대표팀에 함께 선발된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양)희종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뛰고 싶은 선수였어요. ‘대학에서 같이 농구 해보자’는 얘기도 진지하게 나눴죠. 워낙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대학 때 호흡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어요. ‘이때 볼 안주면 삐치겠구나’라는 것까지 다 알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하하. 프로 데뷔 이후 정식경기를 함께 뛰는 것은 올스타전을 제외하면 처음이지만 호흡 맞추는 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어요.”

양희종만큼이나 김태술의 연관검색어에 오르내리는 이름은 또 있다. 바로 그에 앞서 KGC인삼공사의 간판으로 활약했던 주희정. 김태술은 이번 시즌 내내 맞트레이드 상대였던 주희정과의 직간접적인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됐다. 2008-2009시즌 주희정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당시 리그에서 경기흐름을 좌우할 수 있는 유일한 토종 가드였고,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자신의 기록을 새롭게 써내려가며 MVP까지 거머쥐었다. 팀을 맞바꾼 선수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대다. 하지만 김태술은 그만한 개인 기록을 남기는 것도, 주희정보다 나은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말한데 이어 뼈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주)희정이 형은 좋은 개인 성적을 기록하셨지만, 저는 좋은 팀 성적을 남기고 싶어요.” KGC인삼공사를 주희정이 있던 시절보다 강한 팀으로 만들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지는, 굵고 짧은 한마디였다.

6년 주기설은 계속 된다

‘6년 주기설’.

아마도 김태술이 농구화를 벗을 때까지, 아니 평생 동안 그를 쫓아다닐 수식어다. 한국 남자농구는 ‘코트의 마법사’라 불린 강동희를 시작으로 이상민, 김승현 등 6년 주기로 꾸준히 명포인트가드를 배출해왔다. 김태술은 6년 주기설의 후발 주자다. 그는 한국 농구의 미래를 위해 6년 주기라는 기분 좋은 징크스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 명맥이 유지되기 위해선 자신이 분발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처음 6년 주기설의 주인공으로 꼽혔던 대학 신입생 시절만 해도 6년 주기설은 잠깐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애칭에 불과했다. 하지만 성인대표팀과 프로무대를 거친 김태술에게 6년 주기설은 이제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자신을 바로잡아주는 자극제와도 같다.

“저에게 6년 주기설은 선배님들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게끔 만드는 자극제라고 할 수 있죠. 어느 책에서 ‘부족한 게 많으면 그만큼 발전해나갈 부분도 많은 것’이라는 문구를 봤어요. 아직 한창인 저를 위한 문구 같아요. 지금은 선배님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지만, 훗날 포인트가드 계보가 언급될 때 제 이름도 같이 언급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물론 그러기 위해선 선배님들 못지 않게 노력을 기울여야겠죠.” 김태술에 앞서 6년 주기설을 이어간 선배들은 공통점은 MVP 수상, 그리고 소속팀의 정규리그 및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다. 이와 같은 업적은 한편으로 6년 주기설을 증명할 수 있는 잣대라 할 수 있다. 김태술은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은퇴 전까지 농구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리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언젠가는’이라는 단서와 함께 언급된 우승과 MVP 등극이라는 목표도 분명해 보였다. 주희정, 양동근, 전태풍과의 맞대결에서 이기겠다는 욕심은 이미 버렸다. 지금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화려한 개인기가 아닌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개인 기록은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매치업 상대한테 득점을 허용했다고 ‘나도 보여주마’라고 달려들지도 않을 거고요. 팀 승리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승리가 쌓이고 쌓이면 우승을 하게 되는 것이고, 우승하게 되면 그때 가서 ‘우승팀을 이끈 가드’로 조명 받을 수 있겠죠. 개인 기록은 욕심나지 않지만 우승은 정말 간절히 바라는 목표예요. 팬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이번 시즌에 대한 기대가 크거든요. 기대해주세요.”

한동안 멀어졌던 국가대표팀에 재승선하고 싶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리그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면 다시 양희종과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대학 4학년 때 처음 대표팀에 선발됐을 때 ‘앞으로도 계속 뽑힐 수 있겠구나’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어요. 공익근무요원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이 겹치긴 했지만,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지니까 새삼 태극마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됐어요. 다시 (대표팀으로)돌아가야죠.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가 국가대표잖아요?” KGC인삼공사의 재건과 대표팀 재발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는 김태술. 2년 6개월만의 컴백을 앞두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세간의 기대는 시즌 개막이 임박할수록 증폭되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김태술 관련 기사에 익명의 KGC인삼공사 선수는 “농구선수가 김태술만 있나?”라며 부러움을 표할 정도.

“공익근무하는 동안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를 찾는 사람이 많네요. 실망시켜드리지 말아야죠. 적어도 2년 넘게 쉬어서 기량 떨어졌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거예요”라고 각오를 밝히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김태술은 인터뷰 말미에 쏟아지는 관심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뒤이어 “부담을 갖는 선수가 어디 저뿐인가요. 제가 흔들리면 팀도 무너진다는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죠”라고 말하는 김태술에게서는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성숙미가 물씬 풍겼다. 김태술과 진행한 인터뷰 시간은 2시간에 불과했지만, KGC인삼공사의 밝은 미래를 확인하기에 2시간은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SIDE STORY
트위터리안에게 김태술에게 묻다

@ds5201
‘태술’이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은 아닌데….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나요? 술은 잘 드시나요?^^
→‘클 태(太)’와 ‘재주 술(術)’이예요. 굳이 해석을 하자면 ‘재주가 많다’는 뜻이라 할 수 있겠네요. 가드인 저와 묘하게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요? 하하. 술은 못 먹는 편은 아니에요. 술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스타일이죠.

@yosep87
공익근무요원은 오랫동안 경기를 뛸 수 없기 때문에 몸 관리가 더욱 철저할 것 같아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할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만 해주세요.
→몸 관리를 잘하기 위해선 절제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숙소생활을 하는 운동만 하다 일과 이후 자유가 되는 것에 흔들리면 지금껏 쌓아온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몸 관리에 임해야 하죠. 자기관리만 잘하면 오히려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예요.

_최창환 기자 사진_문복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