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생에서)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A: 왜 사업을 했느냐 하는 출발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많이 강의합니다. 부등호를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성공, ·일, ·어떻게 놓고 살 것이냐를 놓고 봤을 때 보통 학생들은 성공을 일 번 일을 이 번, 어떻게 살 것이냐를 마지막으로 보통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름대로 물질적인 성공의 기준을 잡아놓고,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어떻게 자기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일도 잘 안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일 번이고 가장 자기답게 살수 있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다음이고, 마지막이 성공이 되어야 합니다. 부등호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업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라는 고민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스타강사에서 기업 CEO가 된 계기는?
A: 87년 7월에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은 안 잡혀있었습니다. 사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명분을 만들었는데 2년만 돈을 벌어서 독일 가서 공부를 하자는 명분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2억을 벌었습니다. 돈을 벌어보니까 현실과 달랐습니다. 목표를 수정해서 고시공부를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고시공부를 3월 2일부터 시작했는데 일주일 해보니까 못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사시 1차 원서는 넣었습니다. 2개월 정도는 서울대 왔다 갔다 하면서 놀았습니다. 결혼도 했으니까 시험은 쳤습니다.
시험이 끝나니 학부형들이 다시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90년 11월에 학원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개인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 둘째 집사람이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나이가 32이었습니다. 첫째가 먼저 가고 둘째까지 죽고 나니까 망해도 망할 때까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둘째를 묻고 나서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수업은 제가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래서 그때부터 수업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일주일에 60시간씩 가르쳤습니다. 하루에 10시간씩 가르쳤습니다. 애들이 다시 태어나고 안정이 되고 생각해보니까 96년이 되고 나이가 36살이 되었습니다. 그도 한 9년 동안 했는데 해 놓은 것은 없고, 돈은 벌어두었는데, 그때부터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고민을 한 것이죠.
처음에는 벌어 놓은 돈을 가지고 학교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사립학교를 세워서 내가 재단 이사장이 되고, 또 내가 애들 잘 장악하니까 좋은 학교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교육에서 더럽게 번 돈을 가지고 공교육에서 깨끗하게 쓴다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 한 켠에 찝찝함이 있더라고요. 사실은 교육에 헌신하겠다는 것보다는 36살까지 얻지 못했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그 돈으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이사장을 해서 얻겠다는 아주 얄팍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많이 타락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아주 타락하기 쉬운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작은 성공이든 큰 성공이든 약간의 성공만 오면 바로 옆에 실패와 타락이 붙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타락입니다.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특히 대부분 그렇습니다. 돈을 번 사람들이 사회에 봉사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명예를 봉사와 맞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직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더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강의였습니다 강의를 해야 하는데 왜 강의를 그만 두려고 했냐면 사교육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 윤리적으로는 선이지만, 사회윤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있는 애들을 올려 놓으면 누군가는 내려가야 합니다. 계층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수인 역할 밖에 안 하는 것이니까 내가 사회적 악이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이 가지고 있는 계층적 불평등을 완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겠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대중강의를 하자, 기업의 형태로 가지고 가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이천 구상이라는 것을 96 년도의 12 31부터 아침부터 해서 97년 1월 1 일 날 아침까지 연말 연시 34시간 집중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 깨끗한 기업인이 되자. 그렇게 해서 대전환을 하자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p.s 헤럴드에서 한국판으로 이기 때문에 좀 틀린 표현들이 있다.
굵게 표시한 부분이 내가 사교육시장을 가고 싶지 않은 이유들과 비슷해서 이 인터뷰 내용을 일부 가져 왔다.
교과목 사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좀 더 앞선 등수를 받는 것에 있고, 그것을 교육의 성공으로 보기에 내가 여기에 동참하고 싶지도 않다.
가끔 지금보다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왜 그 길로 가지 않는지 답답해 하는 시선으로 나를 보는 사람들이있다.
처음 이길로 들어섰을 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어서였고, 신앙심이 기존 보다 더 진해지면서는 완전히 그 길을 마음에서 접었다. 종종들어오는 과외를 하지 않는 이유도 사실은 같은 이유에서 이다.
저를 이땅에 보내신 이유에 충성스런 제자가 되도록 저의 영육을 붙들어 주소서...
A: 왜 사업을 했느냐 하는 출발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많이 강의합니다. 부등호를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성공, ·일, ·어떻게 놓고 살 것이냐를 놓고 봤을 때 보통 학생들은 성공을 일 번 일을 이 번, 어떻게 살 것이냐를 마지막으로 보통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름대로 물질적인 성공의 기준을 잡아놓고,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어떻게 자기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일도 잘 안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일 번이고 가장 자기답게 살수 있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다음이고, 마지막이 성공이 되어야 합니다. 부등호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업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라는 고민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스타강사에서 기업 CEO가 된 계기는?
A: 87년 7월에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은 안 잡혀있었습니다. 사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명분을 만들었는데 2년만 돈을 벌어서 독일 가서 공부를 하자는 명분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2억을 벌었습니다. 돈을 벌어보니까 현실과 달랐습니다. 목표를 수정해서 고시공부를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고시공부를 3월 2일부터 시작했는데 일주일 해보니까 못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사시 1차 원서는 넣었습니다. 2개월 정도는 서울대 왔다 갔다 하면서 놀았습니다. 결혼도 했으니까 시험은 쳤습니다.
시험이 끝나니 학부형들이 다시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90년 11월에 학원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개인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 둘째 집사람이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나이가 32이었습니다. 첫째가 먼저 가고 둘째까지 죽고 나니까 망해도 망할 때까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둘째를 묻고 나서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수업은 제가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래서 그때부터 수업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일주일에 60시간씩 가르쳤습니다. 하루에 10시간씩 가르쳤습니다. 애들이 다시 태어나고 안정이 되고 생각해보니까 96년이 되고 나이가 36살이 되었습니다. 그도 한 9년 동안 했는데 해 놓은 것은 없고, 돈은 벌어두었는데, 그때부터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고민을 한 것이죠.
처음에는 벌어 놓은 돈을 가지고 학교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사립학교를 세워서 내가 재단 이사장이 되고, 또 내가 애들 잘 장악하니까 좋은 학교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교육에서 더럽게 번 돈을 가지고 공교육에서 깨끗하게 쓴다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 한 켠에 찝찝함이 있더라고요. 사실은 교육에 헌신하겠다는 것보다는 36살까지 얻지 못했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그 돈으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이사장을 해서 얻겠다는 아주 얄팍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많이 타락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아주 타락하기 쉬운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작은 성공이든 큰 성공이든 약간의 성공만 오면 바로 옆에 실패와 타락이 붙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타락입니다.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특히 대부분 그렇습니다. 돈을 번 사람들이 사회에 봉사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명예를 봉사와 맞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직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더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강의였습니다 강의를 해야 하는데 왜 강의를 그만 두려고 했냐면 사교육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 윤리적으로는 선이지만, 사회윤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있는 애들을 올려 놓으면 누군가는 내려가야 합니다. 계층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수인 역할 밖에 안 하는 것이니까 내가 사회적 악이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이 가지고 있는 계층적 불평등을 완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겠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대중강의를 하자, 기업의 형태로 가지고 가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이천 구상이라는 것을 96 년도의 12 31부터 아침부터 해서 97년 1월 1 일 날 아침까지 연말 연시 34시간 집중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 깨끗한 기업인이 되자. 그렇게 해서 대전환을 하자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p.s 헤럴드에서 한국판으로 이기 때문에 좀 틀린 표현들이 있다.
굵게 표시한 부분이 내가 사교육시장을 가고 싶지 않은 이유들과 비슷해서 이 인터뷰 내용을 일부 가져 왔다.
교과목 사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좀 더 앞선 등수를 받는 것에 있고, 그것을 교육의 성공으로 보기에 내가 여기에 동참하고 싶지도 않다.
가끔 지금보다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왜 그 길로 가지 않는지 답답해 하는 시선으로 나를 보는 사람들이있다.
처음 이길로 들어섰을 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어서였고, 신앙심이 기존 보다 더 진해지면서는 완전히 그 길을 마음에서 접었다. 종종들어오는 과외를 하지 않는 이유도 사실은 같은 이유에서 이다.
저를 이땅에 보내신 이유에 충성스런 제자가 되도록 저의 영육을 붙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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